- 저자
- 정지아
- 출판
- 창비
- 출판일
- 2022.09.02
어김없이 온라인 서점에 아이쇼핑이나 하러 들어갔다가 인기가 많은 소설이길래 잽싸게 사서 읽게 되었다. 처음 표지를 보고 그냥 시골? 정도의 느낌을 받았지만 다 읽고 보니 책에 등장하는 풍경을 간단한 일러스트로 잘 표현한 것 같았고 '아버지의'와 '해방일지' 사이의 별이 굳이 빨간색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빨치산인 아버지와 빨치산의 딸인 주인공 사이의 관계를 풀어낸 책이다. 빨치산인 아버지의 여파로 인해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전작 빨치산 동료들, 친가, 주인공이 몰랐던 아버지의 인연 등을 접하면서 주인공은 아버지와 그들 사이의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주인공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로 아버지를 떠올리다가 장례식장에서의 여러 이야기들을 계기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이 책의 메인 시놉시스다.
빨갱이를 주제로 한 소설은 대개 무겁다는 이유로 회피해 왔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관련 소설들 중 가장 가벼우면서도 감동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연좌제로 인해 이후에까지 이어진 피해의 잔흔을 확인할 수 있으면서도 그 잔흔들이 너무 아프고 처절하게 다가오진 않았다는 점이 이 책의 묘미인 것 같다. 아버지가 전봇대에 부딪혀 돌아가시는 장면부터 유물론자인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유골을 뿌리는 마지막 장면까지 내용이 긴밀히 연결되어 책을 보면서 흡입력이 장난 아니었다. 이 책이 빨치산과 관련된 글인 줄로만 알았지만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빨치산도 장례식도 아닌 그저 아버지와 딸의 사랑만 남았다. 결국 이 소설도 사람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딴 사람인 듯 낯설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의 얼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낯선 건 본 적 없는 싱싱한 젊음과 정면을 제대로 응시한, 사팔뜨기 아닌 눈이었다. 사진 속 문척 모래사장은 지금과 달리 곱고 넓었고, 빛바랜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 열기마저 식힐 듯 아버지의 청춘은 싱그러웠다. 아직 사회주의를 모를 때의 아버지, 열댓의 아버지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질곡의 인생을 알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소년 둘은 입산해 빨치산이 되었고, 그중 한 사람은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들을 쫓아다니던 동생은 형을 잃고 남의 나라에서 제 다리도 잃었다. 사진과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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