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jqdqSIEd1CQb7C-ESBzyFWB0pnCSu2q9ueGfJu1IA5o 서평)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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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서평)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by starry L 2023. 3. 7.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저자
정지아
출판
창비
출판일
2022.09.02

 
어김없이 온라인 서점에 아이쇼핑이나 하러 들어갔다가 인기가 많은 소설이길래 잽싸게 사서 읽게 되었다. 처음 표지를 보고 그냥 시골? 정도의 느낌을 받았지만 다 읽고 보니 책에 등장하는 풍경을 간단한 일러스트로 잘 표현한 것 같았고 '아버지의'와 '해방일지' 사이의 별이 굳이 빨간색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빨치산인 아버지와 빨치산의 딸인 주인공 사이의 관계를 풀어낸 책이다. 빨치산인 아버지의 여파로 인해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전작 빨치산 동료들, 친가, 주인공이 몰랐던 아버지의 인연 등을 접하면서 주인공은 아버지와 그들 사이의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주인공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로 아버지를 떠올리다가 장례식장에서의 여러 이야기들을 계기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이 책의 메인 시놉시스다. 
 
빨갱이를 주제로 한 소설은 대개 무겁다는 이유로 회피해 왔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관련 소설들 중 가장 가벼우면서도 감동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연좌제로 인해 이후에까지 이어진 피해의 잔흔을 확인할 수 있으면서도 그 잔흔들이 너무 아프고 처절하게 다가오진 않았다는 점이 이 책의 묘미인 것 같다. 아버지가 전봇대에 부딪혀 돌아가시는 장면부터 유물론자인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유골을 뿌리는 마지막 장면까지 내용이 긴밀히 연결되어 책을 보면서 흡입력이 장난 아니었다. 이 책이 빨치산과 관련된 글인 줄로만 알았지만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빨치산도 장례식도 아닌 그저 아버지와 딸의 사랑만 남았다. 결국 이 소설도 사람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딴 사람인 듯 낯설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의 얼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낯선 건 본 적 없는 싱싱한 젊음과 정면을 제대로 응시한, 사팔뜨기 아닌 눈이었다. 사진 속 문척 모래사장은 지금과 달리 곱고 넓었고, 빛바랜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 열기마저 식힐 듯 아버지의 청춘은 싱그러웠다. 아직 사회주의를 모를 때의 아버지, 열댓의 아버지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질곡의 인생을 알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소년 둘은 입산해 빨치산이 되었고, 그중 한 사람은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들을 쫓아다니던 동생은 형을 잃고 남의 나라에서 제 다리도 잃었다. 사진과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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